2019. 10. 20. 09:47 글과 말
김애란(2019), 잊기 좋은 이름, 열림원
소설가가 쓴 산문집이라 그런지 산문임에도 감각적인 표현력과 몰입력 있는 글 전개가 돋보였다. 작가가 쓴 소설을 한번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글들이었다.
'부사와 인사'는 내가 평소에 부사를 남발하고 있지 않은가 반성해보게 되는 글이었다. 부사는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인데, 그만큼 가볍기도 하다. 부사가 더해지면서 어쩐지 내용은 더 가벼워 지기도 한다. 평소 언어 습관에서 부사를 적절할 때에 쓸 수 있도록, 군더더기 없는 언어가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여름의 풍속'은 안암동 헌 책방에서 '언어학사'라는 중고책을 산 작가가, 거기서 나온 시간표를 토대로 한 연인의 이야기를 추측해보는 내용이다. 안암의 한 연인이 주인공이라서 그런지 추억 돋기도 하고, 작은 단서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재주도 신기했다. 이 글을 읽고 다른 책을 잠시 읽었는데, 거기서 다른 사람의 대출확인증이 나왔다. 나도 작가를 따라 내 앞에 이 책을 빌린 김송*님에 대해서 추측해보았다. 디자인과 일러스트책, 공부법을 빌린 것으로 보아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인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빌린 '가상은 현실이다'-내가 빌린 책이기도 하다-는 수험과 관계없지만 기분전환을 위해 빌린 것 같았다.
'점, 선, 면, 겹'은 책을 읽을 때 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작가의 습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도 원래 책에 밑줄 치면서 읽는 걸 좋아해서 공감이 갔다. 다만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읽다보니, 밑줄 대신에 포스트잇 태그를 붙여서 나중에 그 구절을 옮겨 적는 식으로 하고 있다. 이 글에서 마음에 든 문장은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깎이나니.'이다. 이외에도 마음에 든 구절은 다음과 같다.
평소 문서에 줄을 많이 긋는다. 전에는 색연필이나 형광펜을 이용했는데 지금은 거의 연필만 쓴다. 어떤 문장 아래 선을 그으면 그 문장과 스킨십하는 기분이 든다. 종이 질과 연필 종류에 따라 몸에 전해지는 촉감은 다 다르고 소리 또한 그렇다. 두껍고 반질거리는 책보다 가볍고 거친 종이에 긋는 선이 더 부드럽게 잘 나가는 식이랄까. 어디에 줄 칠 것인가 하는 판단은 순전히 주관적인 독서 경험과 호흡에 따라 이뤄진다. 그리고 이렇게 줄 긋는 행위 자체가 때론 카누의 노처럼 독서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과 리듬을 만든다.
책을 읽다 문득 어떤 문장 앞에 멈추는 이유는 다양하다. 모르는 정보라. 아는 얘기라. 아는 얘긴데, 작가가 그 낯익은 서사의 껍질을 칼로 스윽 벤 뒤 끔찍하게 벌어진 틈 사이로 무언가 보여줘서. 그렇지만 완전히 다 보여주지는 않아서. 필요한 문장이라. 갖고 싶어서. 웃음이 터져. 미간에 생각이 고여. 그저 아름다워서. 그러다 나중엔 나조차 거기 왜 줄을 쳤는지 잊어버릴 때가 많다.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 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니 만일 언젠가 제 소설에 명랑한 세계가 가능했다면 그건 제가 특별히 건강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특별이 밝은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찧고 까불며 놀 수 있는 마당을 선배들이 다져줬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내 농담이 선배들의 진담에 빚지고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 '생일축하' 中
여름이 끝날 무렵, 나는 그곳에서 '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란 질문과 다시 만나보기로 했다. 누군가 우리에게 삶이, 인생이, 역사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데 굳이 왜 그런 수고를 하느냐 묻는다 해도 할 수 없었다. - '알록달록한 점점' 中
얼마 전 '미개'라는 말이 문제 돼 그 뜻을 찾아봤다. '사회가 발전되지 않고 문화 수준이 낮은'이라는 뜻이 먼저 등장했지만 그 아래 '열리지 않은'이란 일차적인 뜻도 눈에 띄었다. 앞으로 우리는 누군가 타인의 고통을 향해 '귀를 열지 않을' 때, 그리고 '마음을 열지 않을 때' 그 상황을 '미개'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中
마음에 드는 글은 '부사와 인사' '여름의 풍속' '점, 선, 면, 겹'이다.
'부사와 인사'는 내가 평소에 부사를 남발하고 있지 않은가 반성해보게 되는 글이었다. 부사는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인데, 그만큼 가볍기도 하다. 부사가 더해지면서 어쩐지 내용은 더 가벼워 지기도 한다. 평소 언어 습관에서 부사를 적절할 때에 쓸 수 있도록, 군더더기 없는 언어가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여름의 풍속'은 안암동 헌 책방에서 '언어학사'라는 중고책을 산 작가가, 거기서 나온 시간표를 토대로 한 연인의 이야기를 추측해보는 내용이다. 안암의 한 연인이 주인공이라서 그런지 추억 돋기도 하고, 작은 단서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재주도 신기했다. 이 글을 읽고 다른 책을 잠시 읽었는데, 거기서 다른 사람의 대출확인증이 나왔다. 나도 작가를 따라 내 앞에 이 책을 빌린 김송*님에 대해서 추측해보았다. 디자인과 일러스트책, 공부법을 빌린 것으로 보아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인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빌린 '가상은 현실이다'-내가 빌린 책이기도 하다-는 수험과 관계없지만 기분전환을 위해 빌린 것 같았다.
'점, 선, 면, 겹'은 책을 읽을 때 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작가의 습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도 원래 책에 밑줄 치면서 읽는 걸 좋아해서 공감이 갔다. 다만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읽다보니, 밑줄 대신에 포스트잇 태그를 붙여서 나중에 그 구절을 옮겨 적는 식으로 하고 있다. 이 글에서 마음에 든 문장은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깎이나니.'이다. 이외에도 마음에 든 구절은 다음과 같다.
평소 문서에 줄을 많이 긋는다. 전에는 색연필이나 형광펜을 이용했는데 지금은 거의 연필만 쓴다. 어떤 문장 아래 선을 그으면 그 문장과 스킨십하는 기분이 든다. 종이 질과 연필 종류에 따라 몸에 전해지는 촉감은 다 다르고 소리 또한 그렇다. 두껍고 반질거리는 책보다 가볍고 거친 종이에 긋는 선이 더 부드럽게 잘 나가는 식이랄까. 어디에 줄 칠 것인가 하는 판단은 순전히 주관적인 독서 경험과 호흡에 따라 이뤄진다. 그리고 이렇게 줄 긋는 행위 자체가 때론 카누의 노처럼 독서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과 리듬을 만든다.
책을 읽다 문득 어떤 문장 앞에 멈추는 이유는 다양하다. 모르는 정보라. 아는 얘기라. 아는 얘긴데, 작가가 그 낯익은 서사의 껍질을 칼로 스윽 벤 뒤 끔찍하게 벌어진 틈 사이로 무언가 보여줘서. 그렇지만 완전히 다 보여주지는 않아서. 필요한 문장이라. 갖고 싶어서. 웃음이 터져. 미간에 생각이 고여. 그저 아름다워서. 그러다 나중엔 나조차 거기 왜 줄을 쳤는지 잊어버릴 때가 많다.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 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니 만일 언젠가 제 소설에 명랑한 세계가 가능했다면 그건 제가 특별히 건강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특별이 밝은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찧고 까불며 놀 수 있는 마당을 선배들이 다져줬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내 농담이 선배들의 진담에 빚지고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 '생일축하' 中
여름이 끝날 무렵, 나는 그곳에서 '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란 질문과 다시 만나보기로 했다. 누군가 우리에게 삶이, 인생이, 역사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데 굳이 왜 그런 수고를 하느냐 묻는다 해도 할 수 없었다. - '알록달록한 점점' 中
얼마 전 '미개'라는 말이 문제 돼 그 뜻을 찾아봤다. '사회가 발전되지 않고 문화 수준이 낮은'이라는 뜻이 먼저 등장했지만 그 아래 '열리지 않은'이란 일차적인 뜻도 눈에 띄었다. 앞으로 우리는 누군가 타인의 고통을 향해 '귀를 열지 않을' 때, 그리고 '마음을 열지 않을 때' 그 상황을 '미개'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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